마약·향정·전문의약품 사기, 경찰 신고시 본인도 처벌받는가?

성매매 등 불법적인 거래를 빙자해 사기를 쳐도 사기죄는 성립하므로, 사기꾼이 마약, 향정, 전문의약품 판매자인 것처럼 가장해 돈만 먹고 튄 경우 사기꾼을 사기죄로 신고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구매자 본인도 불법의약품 구입미수죄로 같이 처벌받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건 정확히 어떤 약을 구입하려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일반의약품인 경우 구매자는 무죄다. 약사가 아닌 사람이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지만(약사법 93조 1항 7호, 44조 1항), 일반의약품을 구매하는 것은 약사로부터 구입하든 불법 판매자로부터 구입하든 항상 합법이다.

전문의약품인 경우에도 구매자는 무죄다. 의약분업 예외지역이 아닌 곳에서 의사의 처방 없이 전문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지만(약사법 50조 2항 등), 전문의약품을 구매하는 것은 처방전이 있든 없든 약사에게 구입하든 불법 판매자에게 구입하든 항상 합법이다.

오·남용우려의약품인 경우에도 구매자는 무죄다. 오·남용우려의약품이란 주로 비아그라 같은 약물을 말하는 것으로, 단순 전문의약품과 달리 의약분업 예외지역에서의 판매 등이 금지되는 등 약간 더 까다롭게 규제된다. 의사의 처방 없이 오·남용우려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오·남용우려의약품을 구매하는 것은 항상 합법이다.


향정신성의약품(이하 ‘향정’)인 경우 조금 복잡하다. 일단 향정은 크게 가목, 나목, 다목, 라목의 4가지로 나뉜다. 가목은 LSD 등, 나목은 필로폰, 암페타민 등, 다목은 펜토바르비탈 등, 라목은 졸피뎀, 프로포폴, 알프라졸람, 펜터민, 로카세린 등을 말한다. 가목으로 갈수록 강하게 규제되고 라목으로 갈수록 약하게 규제된다. 가나다라 각 목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① 의료용 약품으로서의 유용성, ② 의존성(중독성)의 2가지로, 의료용으로 잘 쓰이지 않는 물질은 의존성이 약해도 높은 등급으로 관리되고 그 결과 피웠을 때 더 무겁게 처벌받는다. 이상하지 않나? 원래 법이란 게 좀 이상하다.

흔히 형법에서 말하는, 범죄가 이루어지는 ‘단계’는 예비·음모 → 실행의 착수(미수) → 범죄의 결과 발생(기수)이다. 형법은 기본적으로 예비·음모와 미수는 처벌하지 않고, ‘이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처벌한다’, ‘이 죄의 미수범은 처벌한다’라는 식으로 명시적인 처벌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그에 대해서도 처벌을 가한다. 향정의 경우 가목 매매죄(58조 1항 3호)에 대해서는 예비·음모 처벌규정(58조 4항)과 미수범 처벌규정(58조 3항)이 있지만, 나·다·라목 매매죄에 대해서는 미수범 처벌규정(60조 3항, 60조 1항 2호; 61조 3항, 61조 1항 5호)만 있을 뿐 예비·음모 처벌규정은 없다.

따라서 나목, 다목, 라목 향정을 구입하려던 사람을 마약류관리법위반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향정 구입의 실행의 착수는 있었어야 한다. 향정을 구입하려고 사기꾼에게 돈을 입금한 것은 향정 구매의 실행에 착수한 것일까?

향정 ‘매도’의 실행의 착수가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 2015. 3. 20. 선고 2014도16920 판결은 “필로폰을 매수하려는 자로부터 필로폰을 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금전을 지급받았다고 하더라도, 당시 피고인이 필로폰을 소지 또는 입수한 상태에 있었거나 그것이 가능했다는 등 매매행위에 근접·밀착한 상태에서 그 대금을 지급받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필로폰을 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대금 명목으로 금전을 지급받은 것에 불과한 경우에는 필로폰 매매행위의 실행의 착수에 이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향정 ‘매수’의 실행의 착수가 문제된 사안에서 부산지방법원 2015. 8. 20. 선고 2015노1748 판결은 위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면서 “필로폰 매매미수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필로폰 매매행위의 실행의 착수가 있어야 하는바, 필로폰을 매수하려는 사람이 필로폰 구입을 권유하는 사람에게 그 대금을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대금을 지급받은 사람이 필로폰을 소지 또는 입수한 상태에 있었다거나 그것이 가능한 매매행위에 근접·밀착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이러한 대금 지급행위는 매매의 예비행위로 볼 수 있을 뿐 필로폰 매매행위의 실행의 착수에 이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여 향정 매도뿐 아니라 매수에 대해서도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고 설시한 뒤, 피고인이 판매자에게 매수대금을 보낼 당시 판매자가 필로폰을 실제로 소지 또는 입수한 상태에 있었거나 그것이 가능한 매매행위에 근접·밀착한 상태에 있었다고 볼 만한 뚜렷한 자료가 없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필로폰 매매의 예비행위에 해당될 여지가 있을 뿐 매매의 실행에 착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면서, 공소사실 중 필로폰 매매 미수의 점에 관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 하여 무죄를 선고했고, 같은 사건의 상고심 판결인 대법원 2015. 12. 10. 선고 2015도13915 판결은 이러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고 매트암페타민 매매에서 실행의 착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했다.

따라서 나목, 다목, 라목 향정을 구입하려고 사기꾼에게 돈을 입금하는 것은, 당시 사기꾼이 그 향정을 소지 또는 입수한 상태에 있었거나 그것이 가능했다는 등 매매행위에 근접·밀착한 상태에서 돈을 입금받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판례상 무죄다.

그러나 가목 향정, 대마, 마약을 구입하려다 사기당한 경우에는 실행의 착수가 없었다 하더라도 예비·음모죄로 처벌받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예비·음모죄 해당여부에 대해 추가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향정을 구입할 목적으로 향정 판매자를 가장한 사기꾼에게 구매대금을 보내는 행위는 향정 구입의 예비행위인가? 여기에 대한 판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걸 예비행위로 걸고 넘어지는 것은 좀 무리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편 향정 등 마약류 매매에 대해서는 마약류관리법 외에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이라는 것도 적용된다. 이 법 9조 2항은 “마약류범죄(마약류의 양도·양수 또는 소지에 관련된 것으로 한정한다)를 범할 목적으로 약물이나 그 밖의 물품을 마약류로 인식하고 양도·양수하거나 소지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재미난 점은, 사실은 마약류가 아닌 물건이라 하더라도 행위자가 그걸 ‘마약류로 인식’하고 양도·양수하거나 소지하면 이 규정에 걸려서 유죄가 된다는 점이다. 사기꾼이 택배상자에 마약류가 아닌 명반 가루를 넣어 보냈을 때 구매자가 그 택배상자가 진짜 마약류가 든 상자인 줄 알고 덥썩 받아들면 이 죄가 성립한다는 이야기다. 형량은, 소량의 필로폰 거래하다가 이 죄에 걸려서 처벌받는 경우 대부분 약한 벌금형이 나온다.

요약하면, 나목, 다목, 라목 향정을 구입하려다가 ‘먹튀’ 당한 경우 구매자는 무죄이나, 사기꾼이 단순 먹튀가 아니라 고의로 가짜 택배를 보냈고 구매자가 그걸 진짜 물건인 줄 알고 집어들었다면, 구매자는 마약류불법거래방지에관한특례법위반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한편 가목 향정, 대마, 마약을 구입하려다 사기당한 경우 구매자가 처벌받는지는 사기꾼에게 구매대금을 송금한 행위가 마약류 구입의 예비·음모에 해당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에 대한 판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법적으로 무죄라 하더라도 신고를 하면 일단 본인이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비아그라 등을 구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경찰에 기록으로 남는다는 단점이 있다. 운 나쁘면 그 기록이 서면 또는 구두로 유출될 수도 있다. 검찰보존사무규칙 등에 의하면 형사사건의 서면 기록은 10~11년간 보존된 후 파기되나, 그와 관련된 전산 기록 등이 구체적으로 뭐가 남고 얼마나 오래 보존되는지는 알 수 없다.

경찰 신고 방법은 이쪽을 참조하기 바란다.